[공동 성명] 청소년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는 'SNS 셧다운제', 단호히 반대한다
국회에 '게임 셧다운제'를 연상케하는 청소년 대상 SNS 사용규제 법안이 속속 발의되고 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19세 미만 청소년이 SNS에서 친권자의 동의 없이 정보추천 알고리즘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같은 당 조정훈 의원은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일별 사용 한도 및 정보추천 알고리즘을 사용하기 위해서 친권자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까지 14세 미만의 어린이가 SNS에 가입하면 사업자가 이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의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그 본질은 결국 특정 연령을 기준으로 어린이·청소년의 SNS 이용 자체를 금지하거나 친권자의 개입을 의무화하는 것으로 대동소이하다.
대부분 법안의 내용이 청소년의 SNS 사용에 대해 연령을 기준으로 제한하고 '부모(친권자) 동의'를 받는 것을 골자로 한다는 점에서 이번 법안은 게임 선택적 셧다운제를 연상케 한다. 과학적 검증보다는 1차원적 편견이 우선시되는 점, 근본적 질문보다는 보여주기식 규제만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 달라진 것은 '게임'이 'SNS'가 된 것 뿐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청소년을 통제하려는 차별적 발상이 게임 셧다운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SNS 셧다운제’ 인 것이다. 지난 2021년, 정당법을 개정하면서 만 16세 이상 만 18세 미만 청소년의 정당 가입을 허용하면서도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도록 한 것에 이어, 국회가 아직도 어린이·청소년을 하나의 주체가 아닌 부모(친권자)의 통제 속에 있는 소유물인 양 여기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부끄러운 인식을 가졌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러한 법안들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최근 청소년의 맞춤법 오류, 사용하는 어휘, 구어체 사용 등을 두고 SNS와 뉴미디어 확산으로 인해 청소년들의 지식이나 문해 수준이 떨어졌다는 식의 밈이나 고정관념들이 퍼지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를 반추해보면, 이러한 흐름은 유독 어린 사람들이 새로운 서비스나 매체를 이용하는 것을 폄하해왔던 것의 연장선상이다. 이전 세대에서도 텔레비전 때문에 문해력이 낮아졌다는 식의 주장이 있었고, 한자로 된 사자성어 등을 못 읽는다는 욕을 먹은 세대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한글/한자 병용표기가 사라지고 텔레비전을 비롯한 전자기기 사용이 보편화된 이후 불필요한 논의가 되기도 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최근 SNS를 사용하는 청소년을 두고 비난하고 욕하는 문화는 그저 그런 주장들의 변주인 것이다.
규제의 초점은 청소년의 행위 자체가 아닌, 그 행위를 설계한 시스템에 겨냥해야 한다. SNS 사업자들이 숏폼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의존 증상을 유발하도록 설계한 것은 청소년과 비청소년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특정 연령대를 지정해 SNS 이용을 금지, 제한하는 것은 애시당초 논리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으며, 실제로 숏폼 콘텐츠를 과도하게 소비하는 비청소년 사용자도 적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사(2024)에 따르면, 22%의 성인이 숏폼 이용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렇다면 전 연령대의 SNS 사용을 제한해야 하는가? 알코올 중독과 흡연 중독이 사회적으로 오랜 기간 대두되고 있음에도 제도권 정치에 있는 그 누구도 주류와 담배 판매를 금지하자는 주장을 하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SNS 중독 문제를 청소년만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성인 사용자 역시 유사한 증상을 겪고 있는 현실을 간과한 편파적인 접근이며, 특정 연령대를 대상으로만 알고리즘 사용을 제약하고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절대 문제의 본질에 개입하거나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새로운 규제를 시행했으니 마치 문제가 해결된 것인 양 보여지도록 하는 착시효과를 일으키기에 머무른다.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근거없는 금지나 제한이 아닌, SNS 설계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이번 법안 발의 의원 중 유일하게 공론화 작업을 거친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개최한 토론회의 제목이 "우리 아이 SNS 안전지대 3법 토론회 : 얘들아 릴스 그만 봐!"인 것에 더해, 토론회 패널에 정작 정책 대상인 청소년 당사자는 없다는 지점 역시 이러한 보호주의적 법안을 발의하는 이들이 청소년을 정책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다는 의심을 확신으로 바꾼다. 그렇기에 이번 사안에서 청소년의 SNS 이용을 전면 금지하거나 부모 동의를 받도록 하자는 주장이 여과없이 제기되는 모습은 제도권 정치와 이 사회가 청소년을 아직도 무언가를 '금지'해도 괜찮은, 의견을 청취하지 않아도 괜찮은 만만한 정책 대상자로 여기는 현실을 반증한다.
이에 더해 조정훈 의원이 '우리아이 SNS 안전지대 3법'이라며 함께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과 「교육기본법」 개정안 역시 문제가 크다. 조 의원이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교내 스마트기기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 이는 수업 중에만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하는 교육부 「학생 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보다도 '레벨 업'된 내용인 것이다. 현재 정부·여당이 교내 태블릿PC 사용을 전제로 하는 AI디지털교과서 시행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으로 보면 더욱 모순적인 법안이다.
많은 어린이·청소년의 삶을 고려했을 때, 입시경쟁과 학업적 부담 속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이들이 비교적 짧은 시간에 많은 재미를 얻을 수 있는 숏폼에 호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어린이·청소년의 SNS 이용을 단순히 중독의 문제로 치부하며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이들이 원인을 제공한 입시경쟁과 학벌주의나 그들의 삶의 문제에 그 반의 반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청소년정책은 비청소년인 성인에 의한 일방적인 금지나 규제가 아닌, 청소년의 생활과 삶에 대한 총체적인 고민에서 출발할 때 가능하다. 지금과 같은 '금지일색'인 법안으로는, 중독 문제도 청소년의 삶의 문제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진정한 청소년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당사자의 현실적 필요와 삶의 맥락을 반영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안철수, 조정훈, 윤건영 의원은 청소년의 통신의 자유, 문화적 권리와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규제 일변도의 법안을 즉각 철회하고, 청소년의 존엄과 권리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법안을 마련하라.
2024년 8월 20일
교육공동체 나다, 교육노동자현장실천, 고양학생자치연구소 가론, 대구청소년인권단체 얼라들, 전국청소년진보연대 소명, 전국청소년정치연석회의, 전북청소년인권모임 마그마, 전환 청소년위원회, 정의당 청소년위원회, 청소년녹색당, 청소년인권모임 내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연대하는교사잡것들